게임제작 이야기

자퇴를 고민하는, 예비 게임개발자 고등학생들에게

원생계 2019. 3. 16. 09:00


SNS로 종종 상담이나 질문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게임 개발과 관련된 아주 일반적인 이야길 많이 하다 보니, 질문해주시는 분들이 주로 학생이시거나 게임 개발자 지망생이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인 SNS 지인분이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절대 가볍지 않은 주제인

"자퇴"에 대한 상담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통념상 "자퇴=나쁜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자퇴는 나쁘다. 무조건 학교를 졸업해라" 정도의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제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남 일 같지 않았고, 뻔한 대답보다는 스스로 판단하실 수 있도록 저의 이야기를 정보로 제공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메신저 1:1 채팅으로 옮겨가서 두 시간가량 긴 대화가 이어졌고, 저의 이야기들이 도움이 되셨는지, 자퇴는 다시 한 번 고려해보시는 걸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긴 시간 이야기 중, 상담자 분과 같은, 자퇴를 고민 중인 게임개발자 지망 고등학생분들께 꼭 공유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 보여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방문자께서 게임개발자가 되려는 중/고등학생이시고, 자퇴를 고민 중이시라면 끝까지 읽어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고민이니만큼, 정보는 가능한 많이 참고해보신 뒤에 결정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퇴를 고민하시는 분들께선 이 문서를 닫아주세요. 본인의 판단으로 자퇴를 고민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 이 글은 모든 "자퇴"를 고민중인 분들을 위한 글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게임 개발자가 되고싶은 분들을 대상으로 저의 이야기를 참고해주실 것을 바라며 적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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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무거운 만큼, 이 글이 전달할 정보를 참고하실 때 고려하시라고 저의 이야기를 먼저 적어봅니다. 


과거에 저도 중학생 때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했었습니다. 게임개발자가 되고 싶었고, 좀 더 빨리 되고 싶었습니다. 아마 지금 학생이면서 자퇴를 고민하시는 분들과 비슷한 이유들이 있었고, 비슷한 생각들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자퇴는 하지 않고, 대학까지 진학했습니다. 20살에 대학을 휴학하고 게임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0여 년간 게임회사에서 개발자로 근무 중입니다.


자퇴를 고민하고 계실 여러분들과 같은 고민을 했었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동안 게임개발자로 활동하며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통해 적는 글이니, 딱 그만큼의 신뢰 수준으로 참고해주셨으면 좋겠네요. 

학교를 자퇴하려는 여러분의 이유와 결심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었을 겁니다. 충분히 생각했고 결심한 부분도 있겠지만, 불확실한 부분도 있겠죠. 


- 게임 개발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싶다.

- 학교 공부는 게임 개발에 필요가 없다.

- 입시 위주의 공교육은 불필요하다.

- 이런 공부로 성적을 올리는 것이 괴롭고 힘들다.

- 스스로 게임 개발 공부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다.

- 대학이 필요하면 나중에 검정고시를 보면 된다.

- 학칙을 모두 지키는 것이 답답하고 숨 막힌다.

- 어릴 때부터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냥 빨리 취업해버리고 싶다.


생각하셨던 고민과 비슷한가요?

비슷했으면 좋겠네요. 공감대가 생길 수 있게.

각 항목마다 저의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무시하셔도 됩니다. 참고는 여러분의 자유니까요.



두괄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결론부터


"자퇴는 비효율적인 선택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단언컨대, 꼭 자퇴를 하셔야겠다면 말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들 인생이고 그 선택이니 존중합니다. 이 결정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원하는 목표에 다다르고자 더 효율적이고 맘에 드는 길을 선택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저는 고등교육과정을 밟는 것이 안정적으로 게임개발자가 되는 더 효율적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등학교를 중퇴하시고 훌륭한 개발자가 되신 분들도 계실 테니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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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개발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싶다.

- 학교 공부는 게임 개발에 필요가 없다.


틀렸습니다.

이 생각의 절반 정도는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지만, 절반은 확실히 틀렸습니다. 학교 공부는 게임 개발에 필요합니다. 게임회사를 다니면서, 고등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세계관을 잡을 때는 사회, 정치, 지리, 국사, 세계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여러 과목이 후회되었고,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역시 국어, 사회, 국사, 세계사 등등, 프로그래밍을 할 때는 당연하게도 수학, 물리, 영어 등의 과목이, 3D 그래픽과 쉐이더를 만져야 할 때도 수학이 항상 걸렸습니다. 컨셉아트를 그린다면 더욱 정치, 세계사, 국사, 화학, 생물 등등 다양한 인문학 지식이 필요하겠죠. 외국어인 영어는 말할 것도 없이 영어로 된 정보들을 습득할 때 필요하지요.


"그럼 저 공부들은 자퇴하고 따로 해도 되지 않나?"

물론입니다. 의견 존중합니다. 하지만, 과연 효율적일까요? 저런 내용들을 무슨 자료로 어떻게 공부할까요? EBS? 교과서? 학원? 네,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제나 학원이나 동영상 강의 보고 공부할 거면, 그냥 담당 선생님이 계신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시간표도 짜주고, 쉬는 시간도 주고, 심지어 급식도 나옵니다. 게다가 선생님들은 각자 그 분야 전문가에요.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체계적으로나 뭐 하나 빠짐없이 학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지 않을까요?



- 입시 위주의 공교육은 불필요하다.

- 이런 공부로 성적을 올리는 것이 괴롭고 힘들다.


이 생각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자퇴를 고민하셨으니 과감하게 이야기합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때려치세요.

성적도 신경 끄세요.

무슨 막말이냐고요? 고등학교 자퇴한다면서요? 고등학교 포기하고 자퇴를 고민하는데 대학을 미리 포기하는 게 어때서요? 단순히 생각해도 일단 고졸을 해야 그다음이 대졸인 순서잖습니까.


자퇴를 고려하시는 분들은 "고등교육이 필요 없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대학교육을 위한 공부를 강요한다? 앞뒤가 안 맞잖아요.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와 시험에 대한 부담은 내다 버리세요. 


단, 고등학교는 고등교육에 대해 전문가인 선생님들이 모여계신 곳입니다. 게임 만들고 싶으시죠? 그럼 그 게임 개발에 필요한 공부를 하세요. 위에서 언급했듯, 게임을 개발할 때 고등교육 내용이 무척 많이 필요할 겁니다. 그런 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만들려는 게임이나 개발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 생각나지 않는다면 편하게 관심 있는 과목 수업만 재밌게 들으세요. 좋은 게임 만들려면 다양하게 공부해야 하잖아요?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여러분들은 학생이고, 게임 개발자가 되려는 학생입니다. 그럼 게임 개발에 필요한 공부를 하시면 좋겠죠. 입시 공부를 왜 합니까? 어차피 그게 싫어서 자퇴까지 생각했는데. 그럴 거면 게임 개발에 필요한 공부를 하세요.

( 게임 개발에 필요한 공부하다 보면 결국 이것저것 많이 하셔야 할 거라는 건 안 비밀)


그렇게 게임 개발에 필요한 공부를 하시다 보면, 어쩌면, 아주 높은 확률로,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 대학교 교육에도 관심이 생기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건 가정이지만요. 하지만 만약 대학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그때 대입 공부를 하세요. 늦지 않냐고요? 늦는 게 뭔 상관입니까? 어차피 고등학교도 자퇴하려고 했는데.



- 스스로 게임 개발 공부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다.

- 대학이 필요하면 나중에 검정고시를 보면 된다.


문제 드리겠습니다.

두 선택지 중 어떤 케이스가 좀 더 효율적일까요?


케이스A. 스스로 일정을 관리하고, 식사나 운동 및 활동에 대해 자기관리 철저히 하면서, 혼자 공부할 공간을 마련하고, 공부해야 할 것들을 스스로 정리해서, 정해진 시간 동안 철저한 자기관리로 공부하며 검정고시를 동시에 준비.


케이스B. 기상 시간, 공부시간, 휴식시간을 관리해주고, 운동과 식사도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며, 넓은 운동장과 공부할 공간, 사물함 등을 제공하고,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려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 기회와 좋은 동료를 찾을 가능성도 존재.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건물에 모여 수업을 준비하고 정해진 시간에 체계적으로 수업을 해줌. 개인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기회도 열려있음. 단, 약간의 강제성이 동반함.


눈치채셨겠지만, 케이스A 가 자퇴한 이후의 생활환경이고, 케이스B 는 학교의 생활환경입니다.

"케이스A 에선 학원을 다닐 수 있다!"

네, 맞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학원은 케이스B 에서도 다닐 수 있습니다.


게임회사를 다니는 게임개발자가 퇴사하고 집에서 혼자 무언가를 공부하는 것과, 회사에서 동료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공부하는 것 중, 보통은 후자가 효율이 좋았습니다. 현업 게임 개발자들도 그만큼 케이스A 일 때는 자기관리가 힘들고 환경이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또, 동료들도 많고 정보를 구하기 쉬운 단체생활 속에서 스킬을 쌓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리합니다.


만약,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후에도 자신의 일정과 교육 과정을 모두 꼼꼼하게 체크해서 수행을 도와줄 비서와 같은 조력자가 가까이 있고, 금전과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하다면?

금수저이시군요? 친하게 지내주세요.



- 학칙을 모두 지키는 것이 답답하고 숨 막힌다.


위에서 적었던 이야기를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기상 시간, 공부시간, 휴식시간을 관리해주고, 운동과 식사도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며, 넓은 운동장과 공부할 공간, 사물함 등을 제공하고,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려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 기회와 좋은 동료를 찾을 가능성도 존재.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건물에 모여 수업을 준비하고 정해진 시간에 체계적으로 수업을 해줌. 개인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기회도 열려있음. 단, 약간의 강제성이 동반함.

이것만 떼놓고 보니 엄청난 환경 아닌가요? 이 모든 것들을 대학 등록금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한 고등학교 등록금 + 학칙 준수라는 조건으로 모두 누릴 수 있습니다. 단체생활이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학칙 준수"라는 추가 비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합리적인 가격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학칙이 너무 숨 막히고 힘들면 종종 지각도 하고 조퇴도 하세요. 어차피 자퇴보단 부담이 덜 하잖아요?

"고등학생=모범생" 일 필욘 없습니다.

심지어 자퇴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 어릴 때부터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냥 빨리 취업해버리고 싶다.

특성화 고등학교나 전문교육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학생분들 중에는 일찍부터 회사에서 업무를 진행하시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예외로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합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게임회사에 들어와서 열정을 불태우겠다고!?

맘에 들었네. 같이 재밌는 게임 만들어 봅시다"

이런 드라마를 꿈꾸시나요?

게임회사 경영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수십 명 이상의 지원자분들의 서류를 검토하고 인터뷰어로 면접을 진행해봤지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등의 입사지원 서류에 지대한 공을 들여서 입사지원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열정만 내세우는 미성년자를 서류심사 과정에서 통과시킬 회사는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회사의 사정이 조금 특별하여 준비가 덜 됐지만 열정만 가득한 미성년자를 고용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일반적인 경우라면, 경영자와 인사담당자가 그런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깁니다. 그런 특별한 사정이 있는 회사라면, 특별하게 고용된 사람이 한 명일 거라는 보장도 없고, 회사 경영상의 더 특별한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블랙 회사라거나) "준비는 부족하지만 열정만은 가득한 사람" 이 모인 회사에서 정상적인 게임 개발이 진행될 가능성은 높다고 보기 힘들 겁니다.


과거, 게임산업이 한창 태동기일 시절에는 그런 케이스가 많았다고는 들었습니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준비와 개발을 병행하는 개발자들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산업이 상장한 만큼 경력자도 많고 그만큼 회사들의 개발 문화도 성장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준비가 더 필요한 미성년자를 회사에서 채용해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할당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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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항들을 모두 다뤄보았습니다.

다시 반복해서 적어보자면, 꼭 자퇴를 하셔야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여러분들 인생의 선택이니 존중합니다. 이 결정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단지, 게임개발자가 된다는 목표에 다다르고자 더 효율적인 길이, 저는 고등교육과정이라는 컨텐츠를 모두 소비하고 즐겨서 내 것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개발자는 게이머들에게 제공할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온 국민의 대부분이 "고등교육"이라는 컨텐츠를 같이 소비했는데, 정작 개발자가 "고등교육"이 뭔지 모르는 것도 좀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요? 절대다수가 경험했던 그 경험치를 나만 얻지 못하는 것이잖아요?


공부의 본질적인 목적은, 내가 학습을 필요로 하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데 공부랍시고 시간을 버리는 건, 그냥 무의미한 방황이지 공부가 아닙니다. 나라에서, 혹은 법인이나 개인이 체계적으로 고등교육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한 고등학교를 최대한 스스로에게 도움 되는 방향으로 활용해서, 무의미한 방황이 아닌 "진짜 공부"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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